유령이 떠돌고 있다. 가짜뉴스라는 유령이. 물론 이것을 잡으려는 처방들도 있다. 국회와 정치권이 강하게 내놓고 있긴 한데, 그게 대부분 그렇듯이 이번 처방도 별로 고품질이 아니어서 문제라면 문제다. 가짜뉴스특별대책위원회를 만든 더불어민주당,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교란범이니 제작·유포한 사람을 수사해 엄정 처벌하라고 지시한 이낙연 총리, 그리고 범정부 차원의 대응회의를 ‘일단 보류’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등 국가 주요 기관이 공동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이에 선뜻 동의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가짜뉴스 말고 허위조작정보라는 말을...
칸트가 공공성을 말한 건 시민계급이 막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18세기였다. 오늘 우리가 참 많이도 사용하는 공공성이란 말을 거의 처음 무대 위로 끌어낸 이 대철학자는 ‘이성’을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을 말한다. 칸트는 이성의 공적·사적 사용을 말한다. 이성의 공적 사용은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걸 말한다. 반면 이성의 사적 사용은 선출된 직책의 공직자가 하는 의사 표현이다. 언론소비자가 SNS에 자기 의견을 표현하면 이성의 공적 사용이고, 선출직이나 공직자가 SNS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면 이성의 사적 사용이 된다. 개...
가난한 유학생 시절 선거철이면 베를린 거리에 단출히 차려진 선거 부스들을 돌며 후보자가 주는 좋은 볼펜을 긁어모았다. 유학 초기 독일어가 짧아 몇자루 못 챙겼지만 15년 뒤 유학 말년엔 후보와 열띤 토론을 벌이고 함께 웃으며 볼펜을 다발로 챙겨가곤 했다. 덕분에 독일 볼펜은 돈 안들이고 원없이 썼다. 동료 유학생들에게 나눠주며 선심도 썼다. 독일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선거운동은 우리처럼 요란하지 않다. 독일은 별다른 선거운동 규정이 없다. 정당과 후보자는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장소에 홍보시설물을 세운다. 정책을 담은 팜플렛과 ...
엊그제 부산 경성대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학술대회에서 우리 언론학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연구가 나왔다. ‘포털 저널리즘 연구의 경로 의존성과 탈맥락성’이라는 이 연구는 새로운 테크놀러지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저널리즘에 대한 언론학의 ‘새로운’ 이론과 방법이 결핍돼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의 책무를 무엇일까. ‘탈신비화’다. 대상을 둘러싼 신비로움을 걷어내는 일이다. 플랫폼, AI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발달된 미래 기술을 분석하더라도 그 목적은 언제나 하나, ‘탈신비화’다. 이를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현실...
독일 방송의 아버지 한스 브레도프(Hans Bredow)는 히틀러 집권 당시 방송 이념 문제로 제국방송의 사장에서 파면 당한다. 방송 민주화는 그의 신념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브레도프는 공영방송 재건의 임무를 맡아 지구상 가장 민주적인 협치(Governance)구조를 가진 공영방송 이사회를 구성한다. 그는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수십 명과 소수의 정치인으로 ‘방송의회’를 구성한다. 브레도프의 공헌으로 독일 공영방송 ZDF의 이사회에는 오늘날 무려 60명의 이사가 포진돼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얼마 전 정치인 비율을 더 줄이...
저널리즘 위기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많지만, 대부분 본질에서 상당히 벗어난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 소셜미디어 같은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해서라거나 기레기 때문이라고 화살을 겨누어보지만 답이 시원치는 않다. 위기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없으니 이런 답답한 마음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저널리즘 위기의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수익 구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용자들이 미디어 콘텐츠에 돈을 내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 있어야 저널리즘 사업을 할 것 아니겠는가. 이 단순한 사실은 저널리즘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페이스북이 없는 삶은 어떨까. 최근 페북 데이터 유출 사건 이후 사람들은 조금씩 이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무엇보다 5000만 명가량의 페북 이용자 정보가 대량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페북에 대한 신뢰감이 줄어들고 있다. 돈도 많이 날아갔다. 정보 유출 소식이 알려진 지 단 하루 만에 시가총액은 39조 원이나 사라졌다고 한다. 올해 페북 일일 활성 이용자 수는 전 분기 대비 100만 명이나 감소했다. 분기별 이용자 수가 감소한 건 창사 이래 처음이다. 젊은 이용자의 페북 이탈은 더 가속화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이마...
포털은 언론인가, 저널리즘인가? 이 질문에 대한 문제의식과 진단들은 많다. 그러나 이 질문처럼 마땅한 해법이 없는 질문도 보기 드물다. 더구나 하나의 상품을 다루면서 생산과 유통, 소비라는 일반 경제 원리에 이렇게 집착하는 정치사회적 개념도 보기 드물다. 생산과 유통의 분리에 너무나 집착하고 있다. 물론, 뉴스 생산자(언론사)에서 뉴스 유통자(포털)를 거쳐 뉴스 소비자에 이르는 경제 원리는 뉴스라는 특수한 정신적 상품을 다룬다는 점에서 자본의 여타 활동과는 현저히 다른 점은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미디어 자본의 성격과 정...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오늘 3·1절을 맞이하는 언론의 역사는 비극인가 희극인가. 언론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걸 보면, 언론은 비극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 같다. 너 나 할 것 없이 주변을 둘러만 보아도 언론에 만족한다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오늘 한국 언론의 거울은 마치 어둡게 드리운 저 미세먼지의 도시처럼 불투명하고 희뿌연 그림자를 비추고 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할 거울은 돈과 힘의 어두운 그림자로 얼룩져 있다. 돈이 별로 없고 힘이 별로 없고 빽마저 없는...
독일 적폐청산의 원천, ‘제로 아워’1945년 5월8일. 베를린에서는 나치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나온다. 이날은 독일이 패배한 날이자 히틀러 독재에서 해방된 날이다. 낡은 세계의 몰락과 새로운 출발이라는 모순 속에서 독일인들은 제로 아워(Zero Hour), 즉 0시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1·2차 대전 이후 30여 년간 이어져 온 참담한 과거와의 역사적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종전 이후 독일이 경제적으로는 물론 도덕적으로도 승리한 역사라고 한다면 그 원동력은 바로 이 단어에 담겨 있다. 베를린의 0시는 조금의 핑계도 대...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방송 개혁”이라는 유령이. 1년 전엔 국회 주변을 떠돌더니 요즘엔 언론은 물론이고 정부와 시민사회, 언론노조 사이마저 돌아다니고 있다. 상식적인 사람치고 방송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상식적인 사람치고 방송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 사실로부터 이런 결론이 나온다. 방송 개혁이라는 이름의 유령은 이미 대한민국의 모든 상식적인 시민에게서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 개혁주의자들은 시민을 향해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경향을 공...
재즈만큼 경제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음악도 드문 것 같다. 1차 대전 종전 이후 물질적 풍요 속에서 거대한 경제 블록을 형성한 미국의 1920년대는 ‘재즈의 시대’라고 불린다. 물론 재즈가 큰 돈을 벌게 해주는 문화산업이 되면서 대중의 계몽의식을 가로막는다고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비판하기도 했다. 여기서 한가하게 재즈의 역사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즈가 디지털 경제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되고 있는 현실이 재미있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그것인데, 긱은 재즈연주자가 공연장소에서 필요...